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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 칼럼

황준호

융합시대 새로운 경계 설정의 목적, 방법 및 결과

  • 작성자황준호  연구위원
  • 소속방송제도연구실
  • 등록일 2020.09.17

경계란 사물이 어떠한 기준에 의하여 분간되는 한계를 말한다. 경계의 의미 속에는 기준, 분간, 한계라는 또 다른 개념들이 함께 내포되어 있다. 국어표준대사전을 활용하여 경계의 뜻을 종합적으로 풀이하면, “어떤 대상이나 사물을 그 성질이나 종류에 따라 차이나게 만들기 위하여(목적), 사물의 정도나 성격을 알기 위한 기본 근거를 통해(방법), 그 사물이 실제 작용할 수 있는 일정하게 한정된 영역을 만드는 것(결과)”을 의미한다. 즉, 경계라는 두 글자의 사전적 의미를 통해 어렵지 않게 경계의 목적, 방법, 결과를 도출할 수 있다. 따라서 어떤 대상이라 할지라도 경계를 설정하는 경우에는 목적, 방법, 결과를 모두 총체적으로 고려해야 함을 시사한다.

인터넷이 등장하면서 방송통신 분야에서 경계의 개념이 중요하게 대두하고 있다. 인터넷이 기존에 방송통신 서비스를 구분해왔던 수많은 경계를 와해하는 기폭제가 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우리나라는 물론, 전 세계 각국은 급변하는 방송통신 현실에 부합하는 새로운 경계인 수평적 규제체계를 구축하고 있다. 수평적 규제체계란 물리적 네트워크에 따라 서비스를 구분하던 기존의 수직적 규제체계를 가치사슬에 입각한 계층을 기준으로 규제를 차별화하는 시스템을 말한다. 그렇다면, 수평적 규제체계에 의거하여 새롭게 정립되고 있는 경계의 설정이 경계의 본원적인 개념 속에 내포된 경계의 목적, 방법, 결과의 측면에서 타당한가에 관한 고민이 반드시 수반되어야 한다.

첫째, 수평적 규제체계로의 전환과 새로운 경계의 설정은 합목적적인가? 무엇보다도 수평적 규제체계의 합목적성은 사업자 자율성과 규제의 형평성을 제고하는 것에서 찾을 수 있다. 사업자의 창의적이고 자율적인 기술혁신을 독려하여 관련 서비스 산업의 발전을 견인하고, 동일한 서비스 간에 규제를 차별하지 않는 새로운 경계의 설정은 산업적 측면에서 그 합목적성을 부여할 수 있다. 다만, 새로운 경계가 추구하는 목적을 실효적으로 달성하기 위해서는 경계의 수평선이 동종 서비스를 모두 포함할 수 있도록 매우 길어야 한다. 과거에는 전혀 다르게 취급되었던 서비스들의 상호 유사성과 동질성이 증가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과거의 경계에 의해 분산되었던 관련 정부 부처들 간의 관할권이 창의적인 방식으로 재조직되어야 한다. 규제체계의 재정립 못지않게 정부조직 구조의 혁신적인 개편이 중요한 현안으로 등장하는 이유이다. 최근 우리나라도 OTT를 둘러싸고 관련 부처들이 새로운 경계에서 주도권을 갖기 위한 행보가 시작되고 있는데, 경계 설정의 합목적성을 달성하기 위한 거시적인 시각이 필요하다는 점을 공유했으면 한다.

둘째, 수평적 구조하에서 경계 설정의 방법은 타당한가? 새로운 경계와 관련하여 가장 논란이 많고, 의견이 분분한 분야이다. 유럽의 경우 인터넷 서비스 도입 초기에 네트워크 계층과 콘텐츠 계층(다시 시청각미디어서비스와 정보사회서비스로 세부 구분)으로 경계를 설정하였지만, 유튜브와 같은 개방형 OTT의 영향력이 커지면서 콘텐츠 계층에서 플랫폼 서비스를 구분하는 새로운 경계를 다시 준비하고 있다. 또한, 이 과정에서 당초에 경계 설정의 중요한 기준으로 제시되었던 텔레비전과의 유사성(television-like)은 ‘18년 시청각미디어서비스 지침에서 공식적으로 폐기되는 듯 보였지만, ’19년에 전격 개정된 독일의 미디어협약은 방송과의 유사성(broadcast-like) 개념을 다시 사용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2000년대 중반 IPTV 도입 과정에서 융합 서비스 분류체계에 관한 논쟁이 치열하게 전개되었지만, 제도적으로 새로운 경계를 명확하게 확립하지 못하고 IPTV를 별도법으로 도입하는 묘수를 선택하였다. 이후 방송법과 통신법이 여전히 수직적으로 건재한 상황에서 최근에 새로운 경계에 대한 논의가 재점화되고 있지만, 전통적인 방송 영역에 존재하는 공영방송과 민영방송의 경계도 불분명한 상황에서 방송과 OTT를 포함하는 방송통신 융합 서비스에 관한 경계 설정은 그야말로 첩첩산중이라 할만하다.

셋째, 방송통신 분야에서 새로운 경계 도입으로 인한 변화의 결과는 긍정적인가?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최소한 우리나라의 경우 새로운 경계의 설정을 시작하지도 못한 상황에서 긍정적인 결과를 논하기는 현재로선 불가능하다. 또한, 이미 새로운 경계를 경험하고 있는 해외에서도 결과에 대한 해석이 분분하다. 따라서 결과에 대한 판단은 잠시 유보하는 대신, 새로운 경계로 인해 설정될 새로운 영역들에 대해 어떠한 목표를 부여하고, 이를 어떻게 달성할 것인가를 수립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점을 강조한다. 가령, 주문형과 실시간 시청각미디어서비스에 대한 정책목표는 각각 무엇이며, 이를 달성하기 위한 정책수단은 무엇인지를 선택해야 한다. 다시금 경계 설정의 목적으로 회귀하고 있음을 알아차릴 수 있다.

결론적으로 요약하면, 융합시대 방송통신 분야 규제체계의 혁신은 경계의 설정에 달려있으며, 경계의 설정은 목적, 방법, 그리고 결과에 대한 총체적이고 입체적인 논의를 필요로 한다.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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