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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 칼럼

김민철

‘단말기 대란’에 대한 생각

  • 작성자김민철  연구위원
  • 소속통신전파연구본부
  • 등록일 2021.03.03

이동통신 단말기 대란에 대해서 고민하다가 「매드맥스:분노의 도로」라는 영화의 한 장면에서 단말기 대란을 떠올렸던 기억이 소환되었다. 이 영화는 핵전쟁으로 황무지가 된 지구에 남아 있는 신인류들이 부족한 물과 기름을 쟁취하기 위해 투쟁하는 시대를 배경으로 한다. 영화 초반부에 황무지 속의 기지인 ‘시타델’의 지배자인 ‘임모탄 조’라는 자가 군대 출정식에 등장하는 장면이 나온다. 임모탄 조가 절벽 높은 곳에서 등장하자 그 아래로 굶주린 사람들이 그릇이나 냄비를 들고 몰려드는데, 임모탄 조가 레버를 조작하니 절벽의 물탱크에서 물이 쏟아진다. 사람들은 어떻게든 물을 더 받아보려고 발버둥 치는데 물의 대부분은 그냥 땅으로 떨어지고 잠시 뒤에 임모탄 조는 레버를 되돌려 버린다. 물은 타이밍을 잘 맞춰서 물이 떨어지는 곳에 있던 사람들만 마실 수 있었고 나머지 사람들은 아쉬움을 뒤로 하고 되돌아가게 된다.

이 장면을 보면서 단말기 대란을 떠올린 것은, 많은 이들의 관심을 끌며 아주 짧은 기간에 강력한 혜택이 쏟아지며 그 혜택이 일부에게 집중된다는 측면에서 공통점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가전제품을 비롯한 최신 상품은 좀처럼 할인 판매조차 되지 않는데, 이동통신 단말기 유통에서는 최신 플래그십 인기 모델이 공짜에 가깝게 팔리는 일이 발생하기 때문에 말 그대로 ‘대란(大亂)’으로 불린다. 그렇다면 왜 단말기 유통에서 이런 대란이 빈발하는 것일까?

첫째로 생각해 볼 수 있는 것은 ‘대란’을 마케팅 수단으로 활용하는 것은 아니냐는 것이다. 최신 단말기를 판매하기 위해서 전통적인 광고매체를 활용한 판촉 활동을 할 수도 있지만, 인터넷 시대에서 포털 검색어나 뉴스 검색어 1위를 하는 것만큼 효과적인 마케팅 수단이 있을까? 게다가 저렴하게 단말기를 구입한 경험이 인터넷이나 지인들을 통해서 화제가 되는 바이럴(viral) 마케팅의 위력도 상당하다. 광고비를 지출하는 대신, 그 비용을 일시적으로 강하게 단말기 유통에 집중시키는 것이 홍보 효과가 더 뛰어날 수도 있다는 것이다. 대란이 최신 단말기에만 집중되는 것도 이러한 설명에 설득력을 더한다.

둘째로 생각할 수 있는 것은 대란이 실상은 대란이 아닐 수가 있다는 것이다. 단말기만 판매하는 상황에서 최신 고성능 단말기가 공짜에 가깝게 판매될 가능성은 전무(全無)하다. 공짜 단말기 판매는 이와 결합되어 판매되는 통신서비스 요금의 상승과 직결되어 있다. 예를 들어 백만 원 상당의 단말기를 공짜에 주겠다고 하면서 요금을 2년간 매월 3만 원씩 더 내라고 한다면 72만 원의 새로운 부담이 추가된 것이므로 실제 할인율은 생각만큼 크지 않다. 이렇게 숨겨진 비용들을 충분히 고려하면 대란이라고 할 정도의 할인은 아닌 경우가 대부분이다. 물론 그것도 적은 할인은 아니고 단말기를 싸게 구매할 기회가 제공되는데 이것을 나쁘게 볼 것은 아니라는 주장도 일리는 있다.

그런데, 단말기 대란은 다음과 같은 이유에서 사회적으로 바람직하지 않다. 무엇보다도 단말기 대란이 빈발하면 제품의 품질과 연동된 가격 질서가 크게 훼손되면서 가성비가 뛰어난 중저가 단말기나 중고 단말기의 유통은 크게 위축될 수밖에 없다. 제조사의 신모델은 전(前)세대 모델과도 경쟁하는데, 대란을 신호탄으로 전세대 모델도 자연스럽게 시장에서 퇴출된다. 단말기 다양성이 감소하고 단말기 시장이 과도하게 프리미엄 단말기 시장 중심으로, 신모델 중심으로 쏠리게 되어 소비자 선택권에 제약이 발생하게 된다.

또 한 가지 문제는 소비자들이 대란을 기대하는 한, 이동통신사나 제조사도 그 기대에 어느 정도 부응하지 않을 수 없게 되면서 자신을 구속하게 된다는 것이다. 즉, 대란이 다음 대란을 부르는 현상이 나타날 수 있다. 문제는 이것이 얼마나 지속될 수 있겠냐는 점이다. 앞으로 5G 시대가 본격화되면 스마트폰이 아닌 신유형의 단말기가 속속 등장하게 될 것이다. 5G 통신망을 사용한다고 해서 모든 단말기를 이동통신사가 단말기 지원금을 주면서 유통하는 것은 가능하지 않을 것이다. 결국, 대란으로 익숙해진 소비자들이 단말기의 정상가격을 내는 것에 저항감을 느끼게 되는 것은 5G 생태계의 확산에 그다지 바람직하지 않다.

‘단말기 대란’은 짧은 기간, 강력하게 발생하며 그럴수록 대란의 혜택은 정보력이 뛰어난 소수에게 집중되고 그 부작용은 프리미엄 단말기 위주의 단말기 유통에 따른 단말기 다양성 감소와 통신서비스 요금부담 증가로 나타나며, 중장기적으로는 신유형의 5G 단말기 유통에도 장애가 될 수 있다. 매드맥스 영화에서 임모탄 조는 급수 레버를 되돌리면서 ‘물에 중독되지 말라. 물에 중독되면 물의 지배를 받게 된다’라는 말을 남긴다. 단말기 대란과 과도한 지원금 중심의 단말기 유통구조에 대해서 생각하면서 임모탄 조의 말을 곱씹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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