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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계영

[최계영의 중국 프리즘] 일대일로(一带一路)의 과거, 현재 그리고 미래

  • 작성자최계영  선임연구위원
  • 소속디지털경제사회연구본부
  • 등록일 2023.10.04

중국이 ‘세기의 프로젝트’로 자랑하는 일대일로가 출범 10주년을 맞이하였다. 일대일로는 많은 중국 대중에게 세계에 기여하는 포용적 모델로 인식되고 있지만 미국을 비롯한 서방 세계에서는 중국의 글로벌 정치‧경제‧군사 영향력 강화를 위한 트로이의 목마로 간주되기도 한다.

지난 9월 9일, G-20 정상회의는 ‘인도-중동-유럽 경제회랑’ 구상 추진에 대한 양해각서 체결을 발표하였는데, 이는 명백히 중국의 일대일로에 대한 대항마로 간주되고 있다. 일대일로는 정말로 트로이의 목마일까? 일대일로의 지난 10년간의 공과와 미래는 무엇일까?
 

일대일로와 개발도상국

일대일로는 철도, 고속도로, 에너지 공급망, 항만과 같은 인프라 건설을 통해 과거의 실크로드처럼 동아시아와 유럽을 이어주는 것을 넘어서서 아프리카, 남아메리카, 오세아니아로 확장되어 왔다. 특히 구소련에서 독립한 중앙아시아 국가들과 파키스탄, 서방국가들이 투자를 외면하던 아프리카 지역이 상대적으로 많은 차관을 유치하면서 일대일로에 참여하였고 그리스, 헝가리와 같은 유럽 국가들도 일대일로 프로젝트의 수혜국 명단에 포함된다. 지금까지 중국은 약 150여개 국가의 인프라 사업에 1조달러 이상을 주로 차관의 형태로 제공해 왔다.

투자는 서로 간에 이익을 주고받는 것이다. 투자 여력이 없는 국가가 외국의 자본을 통하여 인프라를 건설하고 자본 공여국도 일정 수준의 이익을 얻는 것은 그 자체로 아무 문제가 없다. 하지만 해당 투자가 경제적 차원을 넘어서서 정치 및 군사‧안보 차원의 레버리지로 작용한다면 문제가 된다. 특히 인프라는 국제정치에서 중대한 힘의 원천이 될 수 있다. 일대일로 수용국이 중국의 기술, 표준, 금융, 숙련 노동력에 의존할수록 자국의 이익을 중국에 종속시키게 될 가능성이 커진다. 중국은 인프라 투자에서 국영 금융기관이나 국영‧민간기업에 주로 의존하지만 정부가 민간에 대한 통제권을 쥐고 능동적 역할을 수행한다. 만약 중국이 글로벌 물류, 무역, 전략 시스템의 심장부가 되면 대외적인 영향력 투사가 용이해짐은 물론이다.

인프라 투자에 수반되는 비물질적인 측면의 권력도 무시할 수 없다. 중국과 개도국 정부 간의 협력을 통한 인프라 건설이 번영을 가져온다는 담론을 대량 생산하고 개도국 정부에도 간접적으로 정치적 지원을 할 수 있는 것이다. 즉 건설 권력과 담론 권력을 병행함으로써 중국은 불균형한 구도에서 개도국에 불리한 입장을 받아들이도록 할 수 있다. 이러한 불균형 구도는 서방이 개도국에 다른 대안을 제공하지 않을 경우 더욱 심화, 고착화될 가능성이 있다.

피터슨 국제경제원, KIEL 국제경제원 등이 일대일로 참여 26개국 100개 프로젝트를 분석한 보고서(2021. 3)는 중국이 영향력 투사를 위해 구체적으로 어떤 방식으로 일대일로를 추진해왔는지를 보여준다. 보고서에 따르면 일대일로 프로젝트는 세 가지 특징을 갖는다. 첫 번째 특징은 비밀유지(confidentiality) 조항이다. 공여 조건, 심지어 차관의 규모나 존재 자체를 알 수 없는 경우가 많아 세계은행이나 IMF와 같은 국제기구를 통한 지원과는 투명성에서 큰 차이를 보인다. 두 번째는 집단적인 채무연장(collective rescheduling)의 금지이다. 대부분의 일대일로 프로젝트는 채무국이 서방 주도의 파리 클럽과 같은 다자간 채무재조정 협약이나 이에 준하는 다른 채권국과의 협약 조건을 추구하지 않는다는 조항을 포함시키고 있어, 사실상 양자 간의 비밀스러운 협약을 통해서만 채무 리스크를 해소할 수 있다.

조기 상환이나 프로젝트 취소 권한과 같이 채무국에 레버리지를 행사할 수 있는 권한을 중국에 일방적으로 부여하는 것이 일대일로의 세 번째 특징으로, 이러한 세 가지 특징은 중국이 정치‧경제‧안보 측면에서 개도국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기반이 된다. 하지만 일방적, 강압적인 영향력 행사는 개도국의 반발을 초래할 수 있으며 개도국에 상호공존의 혜택을 제공한다는 중국의 글로벌 발전 이니셔티브(GDI), 글로벌 문명 이니셔티브(GCI)와 같은 담론에도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점은 중국의 딜레마이다.

위기가 닥쳐야 친구의 진면목을 알아보는 법이다. 일대일로가 최근 당면한 채무과잉(debt overhang) 문제는 중국에 심각한 도전이 될 것이다. 이 문제의 처리 과정에서 타국의 주권이나 정치 체제를 존중해 준다는, 인권에 우선하여 각국의 독자적 주권을 강조하는 국가인 중국의 진면목을 개도국이 제고하게 될 것이다.
 

일대일로가 직면한 난관

코로나 팬데믹은 개도국의 경제에 큰 타격을 주었다.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한 글로벌 시장 교란도 개도국들에 새로운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 엄밀한 리스크 평가보다는 정치‧외교적 논리에 적지 않게 좌우되어 온 일대일로 프로젝트가 글로벌 경제침체 환경에서 채무 상환 위기에 봉착한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아르헨티나, 에디오피아, 파키스탄, 스리랑카, 잠비아와 같이 GDP 대비 부채 비중이 과도해 경상수지 위기에 처한 국가들은 모두 일대일로 프로젝트가 대외부채에서 큰 비중이 차지하고 있다. 이제 중국 기업들도 일대일로에서 이익을 추구하기 어려워지고 중국 수출입은행과 같은 차관 공여 기관들도 채무과잉 문제에 봉착하고 있다.

영국 이코노미스트紙의 평가에 따르면, 중국의 남아시아 투자액의 약 80%, 동남아 투자액의 50%, 중앙아시아 투자액의 30%가 회수불능 가능성이 있다고 한다. 차관의 대부분이 2030년 무렵에 만기가 도래할 것이기에, 이미 내부적 부채 문제가 심각한 중국 경제에 일대일로가 멀지 않은 장래에 추가적인 부담으로 작용할 전망이다.

서방 선진국들은 이미 80년대에 제3세계 외채 문제로 큰 홍역을 치룬 바 있다. 주로 10여 개국 서방 대형은행으로 구성된 채권자들은 부채의 약 1/3을 탕감할 수밖에 없었고 채무국들도 IMF의 구조조정 과정에 들어가면서 잃어버린 10년을 감내했던 것이다. 그런데 지금 중국은 막대한 채무과잉 문제를 거의 홀로 감당해야 한다. 지난 10년간 중국의 일대일로 프로젝트의 상환유예 및 채무 재조정액은 400억불, 부채탕감액은 약 100억불 수준으로 알려져 있는데, 일대일로의 거대한 규모를 감안하면 장기적으로 채무국과의 대규모 부채 재조정을 피할 수는 없을 것이다. 부채를 소유권‧이용권으로 전환하거나 일부를 탕감하는 조치들이 병행하여 이루어질 것인데, 그 수준과 범위는 중국 및 채무국의 경제 상황, 미국‧서구의 인프라 투자 대안의 제시 등에 좌우될 것이다.

분명한 것은, 일대일로가 어려움에 봉착함에 따라 중국의 일대일로 전략도 수정이 불가피하다는 점이다.
 

일대일로의 방향 전환과 서구의 대응 

과잉채무 문제가 해소되지 않더라도 중국이 일대일로 자체를 중단하지는 않을 것이다. 서방의 봉쇄에 맞설 국가 전략적 의미를 갖기 때문이다. 향후 일대일로는 두 가지 측면에서 변화를 시도할 가능성이 높다.

첫째, 투자 규모를 줄이고 리스크 관리를 강화하면서 선택과 집중을 추구할 것이다. 미국의 관세 및 수출통제는 일부 국가들, 특히 동남아 국가들과 중국과의 경제관계를 강화시키는 역설적인 결과를 가져오고 있다. 동남아 국가들이 제재를 우회하는 경로로 활용되고 중국 기업들의 진출도 증가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라오스 수도 비엔티안과 쿤밍 간 고속열차 노선 건설과 같이, 중국의 해외투자 및 인프라 건설은 동남아 전략 지역에 상대적으로 집중될 것이다. 중국은 일대일로가 여전히 죽지 않고 변용되면서 글로벌 발전 및 문명 이니셔티브와 함께 중국의 성장 모델 신화에 봉사하도록 해야 하는 것이다. 반면에 아프리카나 유럽 등에 대한 투자는 크게 감소할 가능성이 높다. 이미 중국의 아프리카에의 추가적 차관 공여는 거의 중단된 상태이고 이탈리아와 같은 유럽 국가들의 일대일로 이탈 움직임도 가시화되고 있다.

두 번째 변화는 기술 발전의 추세에 부응하여 우주 및 디지털 공간 장악에 보다 치중할 것이라는 점이다. 일대일로의 하위 범주인 우주 정보 회랑(Space Information Corridor)은 내비게이션 및 위치정보, 원격 감지 및 인공위성 서비스를 지상 인프라에 제공하려는 구상으로, 이미 베이더우 시스템을 출범시킨 중국 입장에서는 장기적으로 그 중요성이 커질 수밖에 없다. 일대일로의 또 다른 하위 범주인 디지털 실크로드도 주목해야 한다. 디지털 공간의 장악은 정보 우위는 물론이고 데이터라는 중요한 경제‧안보적 자산을 확보한다는 점에서 새로운 지정학적 전장(戰場)이 되어가고 있다. 향후 중국의 대외 인프라 투자는 전통적인 인프라보다는 상대적으로 해저 케이블, 통신 네트워크, 데이터 센터, 스마트 시티와 같은 디지털 인프라에 더욱 집중될 것이 예상된다. 투자 우선순위는 전략적 중요성의 변화에 부응해야 하기 때문이다.
일대일로의 향후 행보는 서방의 대응에도 좌우될 것이다. G-20에서 제시된 인도-중동-유럽 경제회랑 구상은 인도라는 중요한 국가가 참여함으로써 그동안 G-7을 중심으로 일대일로의 대안으로 제시된 PGII(Partnership for Global Infrastructure & Investment)에서 진일보된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 경제회랑 구상은 우리가 참여하고 있는 인도-태평양 경제 프레임워크와도 연계될 공산이 크며, 지원 조건이나 투명성의 차원에서도 일대일로와의 차별화를 추구할 것이다. 즉, 개도국 인프라 지원은 단순히 지원 규모의 차원을 넘어, 규범적 측면에서도 서구 중심의 규칙기반 질서(rule-based order)와 중국식 개발모델 간의 경쟁이라는 성격도 가지게 될 전망이다.

글로벌 인프라 건설을 둘러싼 경쟁이라는 세계적 추세에서, 우리도 우리의 국익을 극대화할 방안을 모색해야 함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G7 주도의 PGII나 인도-중동-유럽 경제회랑 구상은 우리 기업들의 해외진출‧개발협력 기회를 창출할 잠재력이 크다. 우리가 이 기회를 적극적으로 활용해서 한반도를 넘어선 국제협력, 기술동맹에서의 위상 강화라는 열매를 맺기를 기대해 본다.

글 최계영 정보통신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

※ 본 기고는 중앙일보 2023년 10월 3일자에 게재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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