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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들 하십니까?”
제목 “안녕들 하십니까?”
등록일 2013.12.23 조회 7420
고흥석 이미지
고흥석미래융합연구실
위촉연구원

미국의 교육학자인 마크 프렌스키(M. Prensky)는 10~20대 젊은 세대를 디지털 네이티브(digital native)라고 규정하고 있다.1) 디지털 네이티브는 어려서부터 디지털 기기를 마치 원어민처럼 자유자재로 쓴다는 의미에서 붙여진 이름이다. 디지털 네이티브와 관련해 국제 텔레커뮤니케이션 연합(International Telecommunication Union)은 “14~25세 중 최소 5년 이상 활동적으로 인터넷을 사용한 경우”를 기준으로 삼고 전 지구적인 실증연구를 수행한 바 있다. <Measuring the Information Society, Report 2013>이라는 제목으로 공개된 이 연구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의 디지털 네이티브 비율은 무려 99.6%에 이른다.2) 세계 최고 수준이다. 그러나 한국의 디지털 네이티브들은 외부의 시선과는 달리, <88만원세대>로 명명될 정도로 경제적으로 곤궁한 시기를 살아가고 있으며, 한국의 경기침체와 함께 미래를 잃고 연애, 결혼, 출산을 포기한 삼포세대로 인식되고 있다. 하여, 이들 세대는 디지털 네이티브임에도 불구하고, 조지 오웰이 예견했던 <1984>의 공간만큼이나 정보 통제와 감시가 일상화된 사회에서 침묵을 강요받고 있는지도 모른다. 조지 오웰이 예견했던 미래의 디스토피아는 지금 디지털 네이티브에게는 잔인한 현실이다. 비슷한 맥락에서 올더스 헉슬리(A. Huxley)의 <멋진 신세계>(Brave new world) 역시 과학기술의 발달로 인간의 감정과 본능이 통제된 채 오로지 ‘행복 아닌 행복’만을 느끼며 자아를 잃은 디지털 객체로서의 삶을 그리고 있다는 점에서 지금의 현실과 그리 다르지 않다. <멋진 신세계>의 주인공 ‘야만인’ 존 새비지(John Savage)가 행복한 미래 사회에서 “고통 받을 권리”를 말하며 스스로 목숨을 끊는 아이러니를 보여준 것처럼, 헉슬리가 내다봤던 어두운 디스토피아 역시 사실은 가까운 미래이거나 혹은 차가운 현실일 수 있다.

“존재가 의식을 규정한다”는 칼 맑스(Karl Marx)의 거창한 철학적 사유를 끌고 오지 않더라도 우리가 처해 있는 현실은 충분히 우리의 생각을 짓누르기도 하고 때로는 부당함 자체를 수긍하고 용인해버리는 것을 오히려 당연하게 여기게 하고, 그럼으로써 우리는 정서적 안정을 얻게 되는 심리적 퇴행(psychological regression)을 겪고 있는지도 모른다. 우리의 물적 토대, 그리고 거기에 조응하는 사회적 관계. 이는 SNS로 대변되는 지금의 소통의 장(場)에서 우리는 그저 멋있는 풍경 사진과 맛있는 음식 사진 앞에서 “좋아요”, like 버튼을 누름으로써 다른 차원에서 관음(觀音)이 될 수 있는 죄의식에 스스로 면죄부를 주면서 동시에 적정한 수준의 사회적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고 믿으며 스스로 만족하고 있다.  

이러한 현실에서 영화 <매트릭스>(1999)를 떠올린다는 것은 다분히 존재론적 접근이다. 검정색 가죽 바지, 검정 가죽 재킷 그리고 짙은 검정 선글라스를 낀 트리니티가 팔을 좌우로 펼치며 학 모습으로 날아올라 앞차기를 하는 순간, 카메라는 360도 팬을 돌린다. 앤더슨에서 네오(Neo)란 이름으로 매트릭스라는 가상 공간에 들어온 주인공은 날아오는 총알을 피하는 현란하고도 기념비적인 장면을 만들어 낸다. 급기야 스미스일당이 무차별로 날리는 총알을 맨손으로 막아내는 초인의 모습을 보여주기도 한다. 안경다리가 없는 검정 선글라스를 쓴 모피어스의 카리스마 넘치는 모습들, 영화 <매트릭스>가 남긴 영상 미학적 잔상은 오랫동안 많은 네티즌들의 다양한 패러디를 통해 재현될 정도로 강렬했다. 그러나 영화 <매트릭스>가 가진 매력적인 영화적 상상력은 코드화된 가상의 프로그램에 존재하는 공간을 그리고 있다는 점이다.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 공간이 사실은 코드화된 매트릭스의 세계이며, 실재는 이미 AI인공지능 컴퓨터가 인간을 지배하는 세상이라는 것. 그래서 <매트릭스>에서 모피어스는 니옷과 함께 매트릭스 속 인간을 해방시켜야한다는 사명감을 갖고 있다. 그것은 모피어스의 졸렌(Sollen)이다. 앤더슨의 자인(Sein)이 모피어스의 졸렌과 마주하면서 앤더슨은 네오가 되고 앤더슨의 자인은 매트릭스 공간에서 네오의 자인이자 졸렌으로 변모한다.

마찬가지다. 작금의 우리는 자인(Sein)과 졸렌(Sollen)의 양 갈래를 넘나들면서 위태롭고도 예측 곤란한 현실에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 진실따윈 상관없어! 그냥 잘 먹고 잘 살았으면 좋겠어!!  현실과 타협하며 다시 매트릭스 공간으로 되돌아가고 싶어 하는 하던 배신자 사이퍼가 스테이크를 씹으며 내뱉은 대사는 이를 잘 대변해준다.

나도 알아. 내가 느끼는 맛이 가짜라는 거. 진짜 맛있는 게 아니라 스테이크가 입에 들어가면 내 머리로 '맛있다'라는 전기신호가 가고 그렇게 느끼는 거지. 이건 가짜야. 하지만 그게 무슨 상관이겠어. 진짜라고 비참한 것보단 가짜라도 편한 게 더 나은 거 아닌가? 날 매트릭스로 다시 돌려 보내줘.. 그리고 영화배우 같은 유명한 인물로 만들어줘."

2013년의 우리는 헉슬리가 말했던 “멋진 신세계”에서 그것이 코드화된 신호로 자신의 영혼을 잠식하고 있는 매트릭스라는 것을 깨닫지 못한 채, 혹은 알면서도 그 자체로 안녕한 삶을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그래서 사이퍼는 단순한 배신자가 아닌 우리의 모습이었는지 모른다. 그러나 사이퍼의 생각이 한국의 디지털 네이티브들에게 지배적이라고 여기던 순간, 한 대학생이 학교 벽면에 두 장의 대자보를 붙였다. “안녕들 하십니까?”로 시작되는 이 육필(肉筆) 대자보는 침묵과 현실 수용, 혹은 외면이 일상화된 무기력한 젊은이들에게 진짜 “현실”과 대면할 용기를 주면서 많은 사람의 호응과 지지를 얻고 있다. 지극히 아날로그적인 “안녕하십니까?” 대자보는 최첨단 ICT의 상징인 SNS 매체들을 통해 새로운 응답과 동조로 확산되면서, 새로운 소통의 장을 열고 있다. <데미안>에서 싱클레어가 아브락삭스의 알을 깨치고 새로운 자의식의 세계와 조우하는 그 순간만큼이나 극적이다. 어쩌면 그들은 이미 코드화된 매트릭스 공간의 진실을 보여주는 모피어스의 “빨간약”을 선택했는지도 모른다. 쟝 보드리야르가 말한 과도실재(hyper reality)의 현실에 사는 우리에게 영화 <매트릭스>에서 모피어스가 앤더슨에게 처음 던졌던 질문. 그 질문이 지금, 2013년 12월 한국 사회에 새롭게 던져졌다.

“안녕들 하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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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Prensky, M (2001a). Digital Natives, Digital Immigrants : Part 1. On the Horizon, 9(5), 1-6.
2) International Telecommunication Union (2013). Measuring the Information Society, Report 2013. Retrieved from http://www.itu.int/en/ITU-D/Statistics/Pages/publications/mis2013.asp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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